원어이해

에녹의 동행의 삶

2014.06.07 04:12

관리자 조회 수:33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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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삶은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5:21-24에 짧게 기록된 에녹의 삶의 행적에서 동행의 비결과 내용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 많은 힌트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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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동사 1)할라크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무려 1,562번이나 사용되었다. 기본적인 뜻은 ‘걷다, 가다’이다. 이 히브리어 단어에는 ‘동행’이라는 특별한 의미나 개념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걷기’를 의미한다. 뜻이 단순할수록 쓰임새는 오히려 다양하다. ‘할라크’라는 동사도 함께 쓰이는 동사나 목적어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1. 짐승과 피조 세계의 움직임
가장 일반적인 의미가 사람의 걸어감(출 14:29 - “바다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을 뜻하는데 사용되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짐승의 움직임, 물의 흐름과 소리의 확대를 포함하여 폭넓게 사용되었다: 뱀의 기어다님(창 3:14 - “배로 다니고”), 여우들의 노님(애 5:18 -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배의 항해(창 7:18 -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물의 흐름(창 2:14 -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나팔소리의 커져감(출 19:19 -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이상의 몇 가지 대표적인 용례만 살펴봐도 ‘할라크’라는 동사는 사람의 걷는 동작뿐 아니라 짐승과 사물의 모든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운행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뱀이나 여우가 움직이고 배가 물 위에 떠다니며 물이 흐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시 78:39)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호 6:4), 비가 내리고 “그치는”(아 2:11) 것들도 모두 동사 ‘할라크’가 쓰였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처음 창조한 창조의 모습대로 움직이며 동행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심으로 동행하길 원하는 대상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이다.


2. 하나님의 ‘오심’과 사람의 ‘패역’
그래서 ‘할라크’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찾아오시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삼하 7:23),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시 80: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출 33:14),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출 13:21), “내가 네 앞서 가서”(사 45:2).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바람을 뿌리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가고 말았다.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달려나가 맞이하는 동행의 삶을 살지 않은 것이다. 거짓 신들을 좇아갔고(렘 5:23 -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대로 행하였다(렘 7:24 -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렘 11:8 -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사 9:2)이라 표현하였다. 모두 ‘할라크’라는 동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패역한 삶의 행적을 묘사하고 있다.


3.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
패역한 세상, 하나님의 ‘오심’을 뿌리치고 제 갈길로 갔던 사람들 틈에 에녹과 노아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창 5:24, 6:9). 에녹과 노아의 ‘동행’은 히브리어 ‘할라크’의 재귀동사(히트파엘형) 2)이트할레크가 쓰였다. 1,562회의 ‘할라크’ 동사의 쓰임 중 재귀동사인 히트파엘형으로 쓰인 것은 60회인데, 이 중에서 ‘동행’으로 번역된 것은 에녹과 노아의 경우(창 5:22,24, 6:9) 단 세 번뿐이다. 나머지는 ‘할라크’ 동사의 기본 의미인 ‘걷다, 가다’와 연관된 의미들이다 : “거니시는”(창 3:8), “행하다”(창 13:17, 신 23:15, 17:1, 레 26:12, 삼상 2:30, 2:35), “섬기는”(창 24:40, 48:15), “두루 다니며”(수 18:4,8, 대상 21:4, 슥 1:11), “출입하느니라”(삼상 12:2), “왕래하다”(삼상 30:31, 에 2:11), “거닐다가”(삼하 11:2), “유리하였도다”(시 105:13), “횡행하는도다”(시 12:9),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욥 1:7, 2:2),  “급히 흐르는”(시 58:8)


이처럼 ‘할라크’ 동사는 함께 쓰인 동사나 대상에 따라 ‘동행’의 의미를 갖게 된다. 에녹과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반드시 마음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동반자인 부부가 동행하기로 작정한 것도 마음이 맞아서다. 그런 부부일지라도 마음이 틀어지면 결국 갈라져서 동행의 삶이 끝나게 된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에 동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려 애쓰는 삶이다. 하나님 또한 에녹과 노아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그들의 삶에 지팡이가 되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4. 마음을 나누는 동행
예수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마 11:17) 세대를 한탄하며 책망하셨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대한 질책이었다. 이 비유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행의 삶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남의 기쁨을 질시하고, 남의 슬픔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경향이 많다. 남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며 축하해 줄 때 상대방은 나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게 마련이다.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며 애통해 할 때 상대는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인생을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공유했다. 하나님 또한 여느 피조물보다 사람과 함께 동행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할라크’) 완전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 쓰인 ‘할라크’ 동사를 에녹과 노아의 경우에 대입하면 “너는 나와 동행하여 완전한 삶을 살아라”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에녹과 노아처럼,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동행’하기를 원하셨고, 명령하신 것이다. 에녹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여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축복을 받았듯, 오늘 우리 또한 이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구원의 축복에 동참하는 역사가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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