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시리즈 제 2권 잊어버렸던 만남
도서소개 > 제 2 권 > 서평 > Andrew J. Tesia, Ph.D. / 주재용 박사
서평-프랭크제임스박사
프랭크제임스박사

구원받은 모든 백성, 평신도를 포함하여 소명받은 목회자나 신학자가 평생 붙잡고 연구하며 실천해야 할 것은 영감된 계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는 마치 우리의 삶에 양식처럼 영적 생존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말씀의 바른 이해와 적용에는 다양한 방법이 요구되는 바, 무엇보다도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확신, 꾸준한 노력과 탐구가 요청된다.

이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성도가 마땅히 성취해야 할 절대적인 소명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목회자와 신학자 포함) 은혜에 빚진 자 되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시 42:1) 초지일관 말씀과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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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시된 말씀을 일관된 주제를 따라 통시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영감된 말씀이 기록될 당시, 장구한 시대와 역사적 환경, 저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학문적 배경 때문이다.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며 연구해도 우리의 한계로 그 심오한 뜻을 다 헤아릴 수 없다. 주님의 재림, 마지막 날,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할 것(고전 13:10)이다. “마라나타”, 주 오실 날을 간절히 사모할 뿐이다.

최근(2007년 10월과 2008년 5월), 한국의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는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세상을 경악케 할 두 권의 책, 「창세기의 족보」와 「잊어버렸던 만남」을 출간하였다.

10여 년 전 LA에서 오랜 친구 Andrew Phipps 목사를 통해 세계 선교 연합집회에 참석하여 박윤식 목사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을 강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증거하는 박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었다. 그러나 박윤식 목사에 대해 모략하는 일부의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과연 박 목사가 어떤 사람인가를 정확히 알기 위해 그를 주시하면서 지켜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박 목사의 설교를 네 번 정도 더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참으로 큰 감명과 은혜를 받아 형식적이고 사변적인 신앙으로 메말랐던 내 영혼은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다시 소생하곤 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목사를 지켜보면 볼수록 오직 성경 중심으로 살아가는 경건하고 신실한 참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받아 온 것에 대해 많이 안타까웠던 차에, Andrew Phipps목사를 통해 최근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영문판을 읽게 되었다.

두 권의 책은 참으로 경이로운 저술로 한 번 손에 잡은 책을 도저히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책을 읽은 후에 지금까지 마음 한 구석에서 박윤식 목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한없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어 사죄하는 심정으로 서평을 쓰게 되었다.

그는 두 권의 책에서 밝힌 대로 구속사적 관점에서, 섣불리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거대 담론을 언약적 체인으로 엮어 역동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는 이 주제가 기독교 신학의 정수(精髓)요 또한 자신의 믿는 바 신앙/신학적 주제임을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서술하였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을 기도와 말씀 연구에 헌신한 결과였다. 소명 이후 현재까지 성경을 수백독 하였는 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깨달은 말씀, 영적 비밀들을 정리하여 출판한 것이다. 여기 박 목사의 두 작품을 통해 우리는, 목회자와 신학자로서, 그 동안 맡은 바 사명을 다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때로 그의 논제에 귀를 기울이며 도전에 직면해야 할 것이다.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이후 시작된 2000년 교회사에서, 어느 목회자나 신학자가 시도하지 않은 신학적 주제, 구속사적-언약적 관점에서 성경을 명쾌하게 정리했다는 것이다. 사실 시중에는 수많은 성경 주석과 해설서들이 있고, 현존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기존의 다양한 신학적 틀, 대표적으로 칼빈과 정통 신학, 혹은 보수 신학을 기초로,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치며 강단에서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의 원전인 성경을 거대 담론, 언약적 관점에서, 통시적으로 풀어낸 것은 초유의 사건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두 책은 실로 그의 거대한 신학 사상의 핵심이요 그의 능력의 완벽한 논리적 전개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고백대로 학문에 일천하지만, 그 어려운 말씀을 쉽고 명쾌하게 서술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것이다. “족보”는 “족보”대로, “만남”은 “만남” 대로, 그렇게 완벽한 조화와 일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담 이후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제시한 성경의 수학적 연대 계산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과 비교할 때 일부 논의가 요구되지만, 그 자신의 노력과 연구 업적으로 볼 때, 가히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소위 보수를 표방한 채, 목사나 교수로서 사명을 방임하며 교권 다툼으로 세월을 보낸 혹은 보내고 있는 목회자나 신학자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아닐지!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마음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둘째,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박 목사는 현재 82세의 고령이다. 그런데 그는 “족보”와 “만남”에서 보듯이, 매우 평이한, 그러나 매우 섬세하면서도 힘찬 문체로 자신이 깨달은 바 영적 비밀을 논리적으로 줄기차게 쏟아내고 있다. 그의 글을 접하는 순간 누구라도 숨소리를 내거나 혹은 용신할 틈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되는 긴장과 기대 속에 오금이 조여 오는 느낌 속에 마법(?)에 빠져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서술은 어떤 힘에 끌리는 듯, 강력한 영적 주도권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바로 박 목사 자신이 평생을 말씀에 사로잡힌 바 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목사의 설교는 19세기 중엽, 영국과 세계를 뒤 흔들었던 강단의 황태자, 찰스 해돈 스펄전을 상기시킨다. 당시 스펄전은 급속히 좌경화되어가는 현실에 직면하여, 외롭게 강단에서 혹은 저술한 설교문을 통해, 마치 그림을 보는 듯이 독자들의 머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쏟아 부었다. 런던 중앙침례교회에 운집했던 당시 약 7,000-8,000명의 청중들은 숨죽인 채, 환호와 탄성 속에 그의 설교에 매료되었다. 그는 영혼의 사자로 포효하듯이 열정적으로 자신이 받은 바, 은혜의 말씀을 힘 있게 선포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갈등과 오해, 논쟁과 논박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였다. 하지만 그는 말씀에 대한 확신 속에, 칼빈주의 전통에 굳게 서서 목회 사역에 매진하였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사상인 바, 어쩌면 박윤식 목사는 말씀이 희귀하며 선악을 분별할 수 없는 혼탁한 이 시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언어의 마술사인지도 모른다. 박 목사가 말씀을 자유롭게 자신의 언어로 인용하는 기술과 능력은 노령(老齡)에도 불구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온전히 말씀에 사로잡혀 구원에 감격하는 하나님의 종임을 부인할 수 없다.

셋째, 그의 신앙/신학적 기반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시련의 때에, 외부와의 오랜 단절 속에서 하나님만 믿고 바라며, 자신에게 맡겨진 성도들을 위해 오직 목양일념으로 충성하였다. 한 순간도 그분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강렬한 소명감에 붙잡힌 것이다. 그는 자신과 연루된 근거 없는 오해와 질시 속에서 고독한 여정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주님께 헌신된, 성경의 영감과 하나님의 주권을 양손에 붙잡은 정통 칼빈주의의 수호자이다. 잘 아는 대로 초대 교회의 성자 성 어거스틴은 젊은 날, 방탕 생활에 이방 철학, 한 때는 마니교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만난 후, 옛 생활을 청산하고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였다. 그는 창조주의 은총 안에 회심과 구원에 감사하며 마침내 평안을 얻고 생애를 헌신하였다. 오늘날 우리 중에 누가 그를 가리켜 방탕아 혹은 이단이라 비난하며 배척하고 정죄하는가? 지난 교회사 1500년 동안 교회가 그를 통해 받은 바 은혜와 축복을 헤아릴 수 없다. 그의 고백록은 모든 성도들, 특별히 역경 중에 있는 독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주었는가? 지금까지 그는 2000년 교회사에 몇 안 되는 거성(巨星)으로 추앙받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 목사의 “족보”와 “만남”은 마치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보는 듯한 감동을 제공하며, 하나님을 향한 활화산 같은 열망을 발견하게 된다.

넷째, 기독교 신학의 핵심은 성경을 성경으로, 예언에서 성취, 즉 완성으로의 전개이다. 그 중심에 구약의 다양한 모형들과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박 목사는 많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장차 도래할 주님의 재림과 영광을 강렬히 사모하고 있다. 이것은 족장, 아브라함에서 이삭과 야곱, 요셉, 출애굽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에서 서술되었고, 이후 전개될 저작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성경의 구속사적 이해, 즉 언약 사상은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다. 이것은 젊은 시절, 그가 보수적인 신학교와 교단에서 배우고 경험한 배경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고령(高齡)의 연치(年齒)에도 불구하고, 부르시는 그 날까지 마지막 소명을 위해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이 대(大) 작업을 착수한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어느 목회자나 신학자가 이렇게 거대 담론을 일관되게 풀어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능통한 박윤식 목사의 모습은, 신학의 한 분야에 갇혀 있는 신학자들에게 성경을 전체적이고 통시적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큰 도전을 준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자기가 전문적으로 연구한 한 분야에서 능통한 것이 사실이지만, 박윤식 목사는 성경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신학의 모든 분야에 능통한 영적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평생 동안 성경을 읽고 묵상해온 박 목사만의, 그 자신이 주님과의 다짐, 받은 바 은혜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엮어 내는 필생의 작업인 것이다.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온통 성경으로, 말씀과 함께 생각하며 실천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나그네와 같은 세상에서, 사도 바울처럼 주의 제단에 관제로 드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노종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섯째, 정돈된 논리와 실제적 도전, 적용이 탁월하며 매우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랜 경륜과 평생의 목회 사역을 통해 체득된 것으로, 매우 구체적이며 도전적이다. 그의 적용은 간결하면서도 철저히 성경에 기초하였다. 매우 간결하고 평범한 언어지만, 문장에 집약된 그의 언어는 농축된, 어느 목회자나 신학자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신학적 깊이를 포함하고 있다. 특별히 신학적 논쟁점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야곱, 유다와 요셉과의 관계, 모세의 생애를 통해 전개되는 주제들은 전문 신학자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이 120년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노정 42회 진친 장소를 다 수록한 것 등은 노아 시대나 모세 시대 이후 유구한 역사 가운데 최초로 이룬 연구로서, 성경과 신학을 평생 동안 연구해 온 학자라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경이롭고 위대한 업적이다.

간결한 설교, 이야기체를 통해서 거대 담론을 풀어간다는 것은 학문적 논리와 근거를 중시하는 신학에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박 목사는 이 모든 것을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유려(流麗)하고 진솔하게 담론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을 컴퓨터로 영상화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통시적 이해가 아니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만의 노하우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결하기 어려웠던 신학적 난제들을 명쾌하게 해석한 묘미는 가히 압권이라 할 것이다.

마지막 결론으로, 현재 기독교에 긴급히 요청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옛 영광을 회복하고 급변하는 21세기에 우리 교회가 추구해야 할 대명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의 생활화와 더불어 신학적 사고, 구속사적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영감된 계시의 말씀, 성경의 이해와 효과적인 적용은 모든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특별히 목회자가 강단에서 어떻게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는 평생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가 무엇보다도 성경에 정통(正統)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문자적 해석만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 속에 각각의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역사 속에 성경의 계시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조명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말씀의 홍수 시대,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씀이 희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 구속사적-언약적 접근으로 하나님 뜻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출간된 박윤식 목사의 「창세기의 족보」와 「잊어버렸던 만남」은 말씀에 갈급한 성도들의 영적 욕구와 보다 성숙한 삶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저작으로 간주되어 전 세계 교회 앞에 기쁨으로 천거한다. 일독을 권하면서 갑절의 은혜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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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search Institute of Reformed Theology, President

서평-김남식박사
김남식박사

박윤식 목사님의 『잊어버렸던 만남』의 서평을 부탁 받았을 때, 서평자는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매우 주저하였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것은 첫째, 서평자는 저자를 모르며, 그의 다른 책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저자와 서평자는 교파가 다를 뿐만 아니라 성서관을 비롯하여 신학 사상과 신앙 양태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평생을 보수적 신앙과 신학 사상적 경향의 교회를 섬겼던 목회자고 서평자는 평생을 진보적 신학 사상의 학교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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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저자는 목회 현장에서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 기록으로 체험하였을 것이지만, 서평자는 교회 현장적 체험보다는 신학적 논리로 성서를 읽고 그 내용을 하나님의 경륜의 역사 기록으로 이해해 온 사람이다.

둘째는 박윤식 목사님의 책은 구약 성서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사를 전공한 사람이 이 책의 서평을 쓴다는 것은 학문적 한계를 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서평은 구약 성서를 전공한 사람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평을 쓰기로 했는가? 무엇보다도 신학 사상적으로나 신앙 양태로나 학문적 분야로나 전혀 다른 책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욕구, 이 책을 통한 서평자 자신의 신학적 신앙적 성숙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서평자는 이 책의 서평을 쓰게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비록 활자화된 책을 통해서지만 저자와의 만남과 통교를 하게 된 것을 더없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저자가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본 창세기의 족보」(구속사 시리즈 1, 2007 초판)의 저자 서문에서 족장들이 걸어간 믿음의 발자취에서 그들의 신앙이 살아 꿈틀거림을 체험하면서 그 은혜에 감격하여 밤을 지새웠다는 고백과, 구속사 시리즈 2로 출판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본 횃불 언약과 그 성취: 잊어버렸던 만남」의 서문에서 47년 전 하나님 앞에서 하루에 두 시간의 기도, 세 시간의 성경 읽기를 서원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 결심을 실행해 오면서 오직 성경 중심의 외길을 걷기에 여념이 없이 살아왔다는 신앙 고백에서 서평자는 신학자로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금할 길 없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저자에 대한 신앙적 존경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한국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은 매우 바쁘고 피곤하여 책 쓸 여유가 없을 것인데, 구속사 시리즈로 2007년에 첫 책을 출판한 후에 다시 두 번째 책을 2008년에, 80을 넘긴 생애임에도 불구하고 출판하시는 저자의 학문적 정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으로 자기 생명까지도 하나님을 위해서 내놓을 만큼 감격적인 신앙 생활을 해 오셨다. 저자는 구속사 시리즈 1권에서 이 책들이 신학적인 연구물이 아니라 기도와 수백 번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강단에서 선포하고 정리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성경에 대한 깊은 명상과 기도, 그것을 통해서 얻은 계시 신학적 연구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미 출판된 「창세기의 족보」와 이번에 출판되는 「잊어버렸던 만남」을 통해서 분명한 것은 저자가 구약 성서를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구약 성서만이 아니라 창세기로부터 신약 성서 요한계시록까지 성서 66권은 시대적 역사와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삶의 상황이 다르고 편집자 또는 저자가 동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그의 구속사적 경륜을 체험한 사람들의 신앙 고백이며, 하나님의 구속적 경륜은 성서의 주제 중의 주제이다. 하나님은 족장들, 예언자들, 당신이 택한 종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구속사적 경륜을 인간에게 나타내려고 하였다.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부르는 것, 그를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모두 그의 구속사적 경륜의 표현이요 기초다. 이 경륜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이 점에서 저자가 본서를 “구속사적 경륜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다루는 그의 시리즈에서 이번에는 ‘언약’, 특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 언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여러 가지 언약을 맺으셨다. 그 중심 내용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는 이 계약 관계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이 계약에서 시작된다. 그 구체적인 사건이 출애굽의 사건이다. 계약은 지켜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파괴하려고 계약을 맺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인간도 이 계약을 지켜야 했다. 저자가 특히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 언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언약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횃불 언약의 연구를 통하여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은 한 번 맺은 언약을 절대로 파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려고 노력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파기할 때도 하나님은 끝까지 지키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그들이 야훼 하나님을 잊고 바알 신을 섬기는 일로 죄를 짓고, 통치자들은 불의와 부정으로 백성들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죄를 범했을 때, 예언자들은 백성들에게 야훼 하나님임을 기억하라고 했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 백성과 맺은 계약 때문에 그들을 다시 용서하고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약 사랑’(Covenant Love)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고귀하게 창조된 인간은 타락하여 그 형상, 하나님의 언약 속에 담긴 축복,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은혜의 삶의 추억을 모두 잊어버렸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잊은 것을 다시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임을 강조한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인간의 일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며 생명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 중심에 횃불 언약이 있다고 한다.

본서는 모두 다섯 장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구속사적 경륜과 언약을 비롯하여 횃불 언약의 내용, 그 언약의 역사, 언약의 최종 성취, 그리고 결론에서 언약의 미래 완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본서에서 횃불 언약의 역사 (1)에서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요셉 등 족장들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언약의 역사를 기술하고, 그 역사 (2)에서는 출애굽부터 가나안 정복까지의 역사를 다루면서, 그 최종 성취를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 대한 성취에서 끝을 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횃불 언약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시편 105편을 통해서 그 언약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 내포된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이 축복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그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때까지 지켜야 한다.

본서의 저자는 전문 구약 성서 학자가 아니라 목회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연세가 80을 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평자가 충격을 받을 만큼 놀란 것은 중요한 구약 성경 단어들을 원어로 풀이하고 있다는 점, 성경 내용을 성경으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해도움’들(아브라함의 가계도, 하나뿐인 장자의 축복,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요셉이 서로 동거했던 시기, 한눈에 보는 광야 40년 노정,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유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된 야곱의 열두 아들)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직접 현장 답사를 통해서 작성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과 광야 노정(路程)’ 등은 이 책의 가치를 가장 높여주고 있고, 독자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된다. 그리고 이 자료들은 저자의 연대기적 저술 의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한 가지 서평자와 저자의 역사관의 차이임을 전제로 하고, 평한다면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연대기의 문제’라고 보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책의 많은 부분을 출애굽의 연대, 애굽에 거주한 기간, 족장들의 연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요셉의 역사 등을 연대기적으로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연대기적 연구를 통해서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알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역사학에서 연대 연구는 그 기초요 역사 이해의 자료일 뿐 역사 그 자체는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서평자는 역사는 해석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연대기적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의 해석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역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연대기적 (chronological)이라고 하기 보다는 카이로스(kairos)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종말론적 사건은 연대기적 사건으로 이해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본서는 저자의 철저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관에 근거한 저술이기 때문에 비록 서평자와 다른 견해가 있다 해도 이 책의 가치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한국 교회의 다른 목회자들도 저자와 같이 목회를 하면서 성경에 대한 깊은 명상과 그것을 통하여 은혜의 깊은 골을 찾고, 찾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선포할 뿐만 아니라 책으로 출판하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책이 많이 출판되어 많은 신자들이 읽을수록 한국 교회는 성경에 기초한 건전한 교회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신앙은 이성적이면서도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차원의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즉 이 땅에서 하늘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에서 강조하고 관심 갖는 것이 성경에 대한 정직함이다. 성경의 내용은 인간의 역사적 삶에서 그 구속적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우리의 남은 생애를 통해, 그칠 줄 모르게 타오르는 하나님의 사랑의 횃불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으로 뜨거운 만남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저자와 함께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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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한신대학교 교수 및 총장
現 한신대 명예교수, 경건과 신학연구소 소장
전국교수공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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