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권별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분류 인명
영웅의 아들
출처 5권 재판 1쇄 387-388page
6권 초판 7쇄 214, 268, 297-299page

예수님 탄생 당시 유다 지역 통치자.
헤롯 대왕은 주전 73년경 에서(에돔)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 안티파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스몬 왕조 시대 당시 갈릴리 지역 사령관이었는데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 안티고누스가 주전 40년경 수리아를 점령한 파르티아에게 뇌물을 주고 대제사장 겸 왕이 되자 헤롯은 로마로 도망쳤다.
로마 원로원에 의해 왕으로 임명받은 헤롯은 주전 37년 로마 안토니우스에게서 군대 지원을 받아 안티고누스가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다의 왕이 되었고 주전 4년까지 통치했다. 안티고누스를 비롯, 많은 사두개인들을 안디옥에서 처형하였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전 20년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왕위에 있는 동안 7명의 대제사장을 임명하였는데 이들 대제사장들은 정치권력의 비호 속에서 극도로 타락하여 대제사장으로서 독자적인 직분 수행이 불가능했고, 종교 지도자로서의 순수함과 경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헤롯은 전처 도리스와 이혼하고 힐카누스 2세의 손녀 마리암네(Mariamne) 1세와 결혼함으로써, 힐카누스 2세와 그의 친구 안티파터(주전 47년 유대 집정관, 헤롯 대왕의 아버지)는 사돈 관계가 되었다. 이는 평민 출신인 헤롯 대왕이 제사장 가문과 결합함으로써 자기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헤롯 대왕은 전(全) 팔레스타인과 유단 동편의 상당 부분을 다스렸는데, 가이사랴 빌립보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대규모의 건축 사업을 일으키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동시에 자기 왕권을 지키기에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잔인하고 포악한 폭군이기도 했다. 백성들이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 3세를 좋아하여 그의 인기가 높아가자, 질투심과 위협을 느낀 헤롯은 자신의 처남이기도 한 그를 궁전 연못에 익사시켰다. 또한 힐카누스 2세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하였고 자기 아내 마리암네와 자기 장모인 알렉산드라도 죽였다. 심지어 신하들의 중상모략에 속아 자기 자식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다. 아기 예수 탄생 당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학살케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마 2:16).
헤롯은 말년에 지병이 악화되어 매우 난폭해진 가운데 70세를 일기로 죄악된 일생을 마쳤는데 요세푸스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헤롯 왕의 고질병은 몸 전체로 퍼지기 시작해서 그의 고통은 극도에 이르렀다. 고열은 아닐지라도 열이 있었으며, 온 몸에는 피부 가려움증으로 견딜 수 없었고, 뱃속에도 끊임없는 고통과 발에 악성종양과 배의 염증, 그리고 은밀한 부분의 회저(악성 종기)로 벌레가 생기고, 천식으로 호흡조차 힘들어지며 사지에 경련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52-102 서울시 구로구 오류2동 147-76 평강제일교회 에메트인터넷선교회 | 홈페이지 문의 02)2618.7168
Copyrightⓒ2013 Pyungkang Cheil Presbyterian Church | 도서문의 휘선 02)2684.6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