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권별

안티오쿠스 3세[Antiochus III]

분류 인명
출처 5권 재판 1쇄 373-374page
6권 초판 7쇄 274page

셀류쿠스 3세의 뒤를 이어 셀류쿠스 왕조의 가장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
안티오쿠스 3세는 주전 198년 프톨레미 5세와의 전쟁(파내우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지역의 통치권을 획득하였는데 이 시점부터 유대는 셀류쿠스 왕조의 통치를 받았다(단 11:15-16).
안티오쿠스 3세는 프톨레미 왕조에 대한 화친 정책으로 자신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1세(Cleopatra I)를 프톨레미 5세와 결혼시켰다(단 11:17上). 이는 당시 세계 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로마를 견제하고, 딸을 이용하여 프톨레미 왕조를 자기 지배 하에 두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 1세는 프톨레미 5세와 결혼한 후, 남편을 사랑하여 프톨레미 왕조를 위해 헌신하였고 그 왕국에 충성을 바쳤으며 자기 남편 프톨레미 5세로 하여금 로마와 동맹을 맺도록 하였다. 그 결과 안티오쿠스 3세의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다(단 11:17下).
안티오쿠스 3세는 지중해의 여러 섬들을 공격하여 많이 점령하였고(단 11:18上) 다니엘의 예언대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등장했던 ‘한 대장’(단 11:18), 곧 로마의 ‘루키피오 스키피오’(Lucius Scipio) 장군을 심하게 모욕하였다. 그러나 스키피오 장군은 그 모욕을 중단시키고 오히려 그 모욕이 안티오쿠스 3세에게 돌아가게 하였으니(단 11:18下) 이것이 바로 마그네시아(Magnesia)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스키피오 장군은 군사 3만으로 안티오쿠스 3세의 7만 군대를 격파하고, 안티오쿠스 3세의 아들 안티오쿠스 4세를 비롯한 20여 명을 로마에 볼모로 끌고 갔으며 또한 해마다 막대한 배상금을 로마에 바치게 하였다.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에게 대패한 후 자기 나라로 돌아와 재기를 다짐하며 군비를 확장했으나 반란군에게 살해당했다(관련 예언 - 단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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