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9권 성막의 명칭

2017.08.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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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막의 명칭

‘성막’은 한자로 ‘거룩할 성(聖), 막 막(幕)’으로, ‘거룩한 막’이라는 뜻입니다(출 40:17). 이는 성막이 세속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 거룩한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성막과 동의어로 ‘장막’이 사용되고 있는데, ‘장막’은 한자로 ‘휘장 장(帳), 막 막(幕)’으로, 둘러치는 막, 가리는 막‘이라는 뜻입니다. 성막을 가리키는 헬라어로는 ’스케네‘(히 8;2, 5, 9:2-3, 6, 8, 11, 21, 13:10), ‘스케노스’(고후 5:1, 4), ‘스케노마’(행 7:46)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성막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미쉬칸

‘미쉬칸’은 ‘살다, 거주하다’라는 뜻을 가진 ‘샤칸’에서 유래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처소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민 24:5, 욥 21:28, 시 78:28, 87:2, 아 1:8, 렘 9:19, 30:18). 그러므로 ‘미쉬칸’이 성막이나 장막으로 번역될 때는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처소’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히브리어 ‘미쉬칸’은 출애굽기에서는 대부분 ‘성막’으로 번역되었으며(출 26:1, 6-7, 12-13, 15, 18, 20, 22-23, 26-27, 30, 27:9, 35:1, 15, 18, 36:8, 14, 20, 22-23, 25, 27-28, 31-32, 38:20-21, 31, 39:32-33, 40, 40:2, 5-6, 9, 17-19, 21-22, 24, 28-29, 33-36, 38), 레위기에서는 ‘장막’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레 8:10, 15:31, 17:4, 26:11). 민수기에서는 ‘성막’으로 번역되기도 하고(민 3:25-26, 29, 36, 4:25-26 등), ‘장막’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민 1:50-51, 9:19-20 등). ‘미쉬칸’이 ‘회막’으로 번역된 것은 민수기 3:7 한 곳뿐입니다.


‘미쉬칸’이 ‘증거’를 뜻하는 ‘에두트’와 함께 쓰일 때는 주로 지성소를 가리키는 ‘증거막’(미쉬칸 하에두트)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출 38:21, 민 1:50, 53, 10:11, 참고—행 7:44, 계15:5). 성막의 지성소 안에 증거궤(출 25:22, 26:33-34, 27:21, 30:6, 31:7, 40:5, 21, 레16:13, 민 7:89)가 있고, 그 증거궤 안에는 증거판(출 25:16, 21, 40:20)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성막을 증거막이라 부른 것입니다.



(2) 오헬

‘오혤’은 ‘장막, 막’이라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쓰일 때는 주로 유랑하거나 유목 생활을 하던 고대 중근동 사람들의 이동식 가옥을 가리킵니다. 동물의 가죽이나 검은 염소털로 짠 거친 천(휘장)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가죽이나 천이 팽팽하게 펴지도록 말뚝을 땅에 박고 줄로 고정하였습니다(삿 4:21, 사 33:20, 사 54:2).


‘오헬’이 성막과 관련하여 쓰일 때는 ‘장막, 회막, 막’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시편 27:5-6, 61:4에서는 “장막”으로 번역되었으며, 출애굽기 33:9, 11에서는 단독으로 “회막”(모세가 세운 임시 회막)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증거’를 뜻하는 ‘에두트’와 함께 쓰여, 성소 안쪽의 지성소를 가리키는 의미로 “증거의 장막”(오헬 하에두트)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민 18:2).


특별히 ‘오헬’은, 성소와 지성소를 전체적으로 덮고 있는 두 겹의 앙장과 두 겹의 덮개 중에서, 두 번째 앙장인 염소털로 된 외부앙장을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출 26:7, 36:14).


또한 ‘오헬’은 ‘지정(약속)된 장소, 시간, 절기’를 뜻하는 ‘모에드’와 합하여 ‘오헬 모에드’로 쓰인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때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임을 강조하여 “회막”(會幕:성소와 지성소를 포함하는 공간)으로 번역되었습니다(출 27:21, 28:43, 29:4, 10-11, 30, 32, 42, 44, 30:16, 26, 36, 31:7, 38:30, 40:2, 6-7, 12, 22, 24, 26, 29-30, 32-35).


하나님의 ‘오헬’은 사람의 장막처럼 쉽게 무너지거나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안정되고 견고한 처소를 의미합니다. 이사야 33:2(바른성경)에서 “우리 절기의 성읍, 시온을 보아라. 너희 눈은 예루살렘을 볼 것이니, 안전한 거처이고, 옮겨지지 않을 장막(오헬)이다. 그 말뚝이 결단코 영원히 뽑히지 않고 그 밧줄이 결단코 하나라도 끊어지지 않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은 대적들이 알지 못하는 절대 안전지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막을 내 거처로 삼는 자는 환난을 당해도 절대 요동하지 않고 평안합니다.



(3) 미크다쉬

출애굽기 25:8에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성소’는 히브리어 ‘미크다쉬’로, ‘거룩하다, 분리되다’라는 뜻의 ‘카다쉬’에서 유래하여 ‘신성한 곳, 거룩한 곳’(holy place)이 라는 뜻입니다. ‘미크다쉬’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 주시는 장소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하고 구별된 곳입니다(겔 45:3-4). 그래서 레위기 19:30에서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레 26:2).



(4) 소크(pavilion)와 바이트(the house)

‘미쉬칸’과 ‘오혤’과 ‘미크다쉬’이외에도 ‘소크’와 ‘바이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크’는 ‘은신처, 장막, 초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크’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이 모든성도의 은신처요 절대적인 보호의 피난처임을 비유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27:5에서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초막’이 바로 ‘소크’입니다.


‘바이트’는 ‘집,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하나님’과 결합되어 사용될 때는 예배의 장소 또는 성막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집”(삿 18:31)이나 “여호와의 집”(삼상 1:7), “여호와의 전”(출 23:19, 대상 9:23)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 성막의 명칭에 담긴 구속사적 의미

성막의 신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구조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계시해 주실 때 글이나 말로 하지 않고 그 식양을 보여 주셨습니다(출 25:9, 히 8:5). 그래서 성막은 ‘눈의 복음’(The gospel of eyes)이라고 불렸으며, 40년 광야 노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임재해 주셨던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완벽한 모형이었습니다. 이러한 신비가 최절정에 이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그렇다면 성막과 관련된 성육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요한복음 1:1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이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빌 2:7-8, 참고—롬 1:3, 8:3, 갈 4:4, 딤전 3:16, 히 2:14, 벧후 1:16-17, 요일 1:1-2, 4:2, 14, 요이 1:7).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세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가시적(可視的)으로 만들게 하신 것처럼, 본래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지만,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가시적(可視的)으로 오신 것입니다(요 1:18, 딤전 6:15-16).



(2)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거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14에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거하시매”라는 단어는 헬라어 ‘스케노오’로, ‘천막을 치다, 살다’라는 뜻입니다. 스케노오의 명사 ‘스케네’는 70인경(LXX)에서 ‘성막’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장막으로 이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참고-출 29:45, 레 26:11-12, 시 121:5-6, 사 4:2-6, 겔 37:27-28, 요 1:14-18, 2:21, 계 7:15-17, 21:3). 실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 ‘움직이는 성막’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언약의 성취입니다(사 7:14 , 8:8, 마 1:23).



(3)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음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14에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광”은 헬라어로 ‘독사’인데,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 및 ‘하나님의 현현’을 가리킬 때 쓰인 ‘카보드’를 70인경에서는 거의 ‘독사’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신 것과 같이, 이제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심으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며(요 17:5, 24, 고후 3:18, 4:4, 6, 히 1:3),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절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름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 곧 ‘자기 영광’으로 다시 오셔서(마 16:27, 24:30, 25:31, 막 8:38, 눅 9:26, 24:26, 딛 2:13, 벧전 4:13) 하나님의 영원한 장막을 우리 가운데 치고 우리와 함께 거하심으로 그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실 것입니다(계 7:15, 21:3, 11, 23).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장막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인간들이 친 장막은 무방비요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절대 보호가 한결같은 곳입니다. 그 장막 안에 거하는 자는 모든 환난에서 보호를 받으며, 눈물과 애통과 사망이 다시 없고, 넘치는 위로와 평안으로 날마다 호위를 받습니다(신 32:10, 시 5:12, 계 7:15-16, 21:3-4). 그 장막은 더위와 추위로 상하지 않게 하는 절대 보호의 장소요, 환난 중에 원수를 피하는 절대 안전의 피난처입니다(요 16:33, 참고—시 27:1-6). 그 장막은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구원의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 8:51, 10: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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