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2권 엘리에셀의 사명 완수

2016.03.2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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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셀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청지기였습니다. 창세기 24:2에서, ‘아브라함의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전 2082년 횃불 언약을 받을 때 아브라함이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라고 자식처럼 신임했던 것을 보면(창 15:2), 이미 그 전부터 아브라함을 오래도록 섬겨 온 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하란에서 함께 나온 종이었다면(참고-창 12:5) 이삭이 결혼할 당시(주전 2026년)까지 엘리에셀은 아브라함 집안에서 65년 이상 충성해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할 때 그도 할례를 받았으며(창 17:23),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요, 매사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자기가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할 자식의 배필을 택하는 일까지 맡길 만큼, 가장 신임하는 종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주인 아브라함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의심치 않았으며, 주인의 약대 열 필과 함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났습니다(창 24:10). 참된 종은 주인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은 하나님의 종들인데(계 7:3-4), 이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계 14: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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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엘라해로이에서 나홀의 성(밧단아람)까지 약 842㎞
엘리에셀은 노구(老軀)를 이끌고 멀고 먼 거리 험한 여정을 힘을 다한 끝에, 마침내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 우물 곁에 도착하였습니다(창 24:11).
엘리에셀이 주인의 명을 받고 출발했던 브엘라해로이(창 24:62)에서 도착지 밧단아람(하란)까지는 약 842㎞입니다. 엘리에셀이 종자들과 함께 약대 열 마리를 이끌고(창 24:10, 32, 54) 하루 40~50㎞ 정도씩 매우 빠른 속도로 갔다고 해도 최소한 17~21일이 걸리는 어마어마하게 먼 여정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약대는 250~350㎏을 싣고 1시간에 5~6㎞ 속도로 하루 8~10시간을 1주일 이상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엄청난 지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사명 완수를 위한 기도
주인의 어려운 부탁을 받고 당황스럽고 걱정도 되었지만, 그는 도착하는 순간부터 주인의 뜻을 위하여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올렸습니다(창 24:12).


첫째, 주인을 위하여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順適)히 만나게 하사”(창 24:12)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순적히’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세드’는 ‘은혜롭게’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종은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창 24:12),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 24:14)라고 기도하여, 결코 자신의 생각대로 기도하지 않고 주인의 소원을 안고 기도하였으며, 시종일관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오랫동안 주인 아브라함을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주인 아브라함에게 오직 은혜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아 왔던 것입니다(창 24:27).


둘째, 이삭의 아내임을 알게 하는 표징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제시한 것은 지금 있는 그 우물 곁에 섰다가, 물 길러 나오는 한 소녀(처녀)에게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라고 요구할 때, 그가 물을 마시도록 허락할 뿐 아니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라고 하면, 그가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는 표징인 줄로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창 24:13-14).


3. 기도한 조건에 꼭 맞는 처녀 리브가
첫째, 기도가 아직 마치기 전에 우물가에 나온 처녀였습니다.
엘리에셀이 기도한 조건에 꼭 맞는 여인이 순적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자신의 기도를 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창 24:15上).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온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하지 아니한 처녀”였습니다(창 24:16).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구한 것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준비하셨음을 보여 줍니다(사 65:24, 마 6:8). 참으로 우리는 기도하는 데 게으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 응답에 빠른 분이십니다(단 9:20-22, 합 2:3, 눅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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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종이 요청하자 물 항아리의 물을 급히 내려 마시게 하였습니다.

처녀가 내려가서 물을 그 물항아리에 채워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그 종은 마주 달려갔습니다(창 24:16-17上). “마주 달려가서”에서 “마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어원 ‘카라’는 ‘만나다’라는 뜻으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만남을 뜻합니다(참고-창 18:2, 삼하 19:15). 종은 노구로 험한 장거리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허겁지겁 달려갔습니다. 마치 자기 배우자를 구하듯이, 자기 며느리를 구하듯이, 흥분하며 뛰어가서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라고 청하였습니다(창 24:17下).


리브가는 늙은 나그네가 물을 요청했을 때 “주여 마시소서”라고 말함과 동시에 “급히” 물을 내려 마시게 하여(창 24:18), 험한 장거리 여행에 지치고 목마른 종에게 새 힘을 주었습니다.


셋째,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약대 열 마리에게도 배불리 마시게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리브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창 24:19-20). 여기 “배불리”는 히브리어 ‘아드 임 킬루’로, ‘그것들이 마시기를 다 마칠 때까지’라는 뜻입니다. 약대는 장시간 물을 먹지 않고도 견디는 동물인데, 반면에 배불리 가득 마신다면 ‘사막의 배’라는 별명대로 엄청난 양의 물을 섭취합니다. 몸집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약대 한 마리가 먹는 물의 섭취량은 적게는 50리터, 많게는 120리터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 마리를 배불리 마시게 했다면(창 24:10), 리브가는 한참 동안 수십 통의 물을 길어 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부었습니다(창 24:20). “급히”는 ‘서두르다, 재촉하다’라는 뜻의 ‘마하르’의 피엘(강조)형으로 ‘격렬하게 서두르다, 애타게 걱정하다’입니다. 그리고 ‘붓다’의 히브리어도 ‘아라’의 피엘(강조)형으로 ‘남김없이 쏟아 버리다’라는 의미인데, 리브가가 마치 자신의 약대처럼 걱정하며 적극적으로 돌보는 모습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물 항아리가 10~20리터 정도 된다면, 물을 가지고 올라오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기를 열 마리의 약대가 다 마실 때까지 수십 번 반복하였을 것입니다(창 24:20).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배려였고, 그지없이 선량한 마음씨였습니다. 히브리서 13:2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리브가는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하나님이 보내신 종을 만났던 것입니다.


4. 순적한 응답에 대한 감격스러운 경배와 찬송
종은 자신이 기도한 것이 너무나도 순적하게, 그것도 지극히 작은 조건까지 완벽하게 응답된 것이 너무나 놀라왔습니다. 엘리에셀은 너무 기쁜 나머지, 리브가가 약대에게 물을 마시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서서 그녀를 주목하며 과연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했습니다(창 24:21).

그는 기도한 대로 성취된 것을 확인한 후, 자신에게 베푼 친절과 선행에 대해 감사의 표시로 “반 세겔 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리브가에게 주었습니다(창 24:22, 30). 금고리 곧 코고리(창 24:47)는 “반 세겔 중”인데 5.71g에 해당하며, 손목 고리는 “열 세겔 중”인데 114.2g이 넘습니다. 잠언 18:16에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잠 17:8).


이제 종은 그녀가 아브라함과 친척지간인지를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종은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창 24:23上)라고 물었고, 리브가는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창 24:24). 그 순간 엘리에셀은 리브가를 만난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창 24:26). 그리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고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라고 감사하였습니다(창 24:27, 48). 참으로 엘리에셀은 경건한 신앙가로, 아브라함 가정에 오래 살면서 기도를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생활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5. 지체하지 않고 주인에게 돌아가는 엘리에셀
종은 한시 바삐 아브라함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귀향 채비를 서두르며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창 24:54). 리브가의 오라비와 그 어미가 “소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라고 청할 때에도, 종은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라고 재촉했습니다(창 24:55-56).


엘리에셀은 늙은 종에게 심부름을 보내 놓고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주인 아브라함을 생각하면서 한시라도 빨리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충정이 가득했습니다. 어제까지 장거리 여행으로 몸에 누적된 피로 따위는 아랑곳없이 단 하루 만에 길을 다시 나선 것입니다. 오직 주인의 뜻을 이루고 주인에게 그 소식을 급히 전할 생각으로 가득했으니, 참으로 투철한 사명 의식이었습니다. 오늘날 전도자에게는 엘리에셀과 같은 사명이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라고 그의 사명을 밝혔으며, 세례 요한 역시 그의 사명을 가리켜 신부를 중매하는 ‘신랑의 친구’로 표현하였습니다(요 3:29).


아브라함의 종은 환도뼈 맹세를 통해 주인의 뜻과 연합한 이후 아브라함의 마음과 온통 하나가 되어 있었으며, 한순간도 그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 144,000(계 7:3-4)은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었으며(계 14:1),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계 14:5). 이들 역시 진실되게 모든 생각이나 언어가 오직 주인의 마음과 하나 된 자들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하여 일하는 엘리에셀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일하시는 성령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성령은 교회와 그 성도들을 위하여 신령한 여러 은사들(고전 12:4-11)과 아홉 가지 열매(갈 5:22-23) 등과 같은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참고-창 24:10, 22, 53). 성령은 그 감화와 교통하심으로 교회와 그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로 구속을 받아 살리심을 받게 인도합니다(롬 8:9-11, 참고-창 24:58). 성령은 교회와 그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성부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가 되게 하시며(갈 4:6-7),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롬 8:16-17, 참고-고전 12:3), 그들이 받는 기업의 보증이 되십니다(엡 1:14). 지금도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어두운 데서 빛 가운데로 불러내어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 주시고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해 주십니다(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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