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2 19:19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모두가 성(聖)가족의 일원이요 형제자매들입니다. 부르심의 한 소망 가운데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뜻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역사 그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서로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어야만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서로’라는 것은 너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너나 나나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혼자서는 악한 세상에서 말씀의 뜻을 온전하게 세워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자어 사람 인(人)자를 봐도 서로의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애 때는 부모를 의지합니다. 성장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의지합니다. 늙어서는 부모님들은 자식을 의지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서로가 있는데, 서로의 축복을 받아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지체 관계를 형성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로서, 서로의 끈이 견고하게 엮어져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 성도 간에 서로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2에서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뭘 하겠나...’ 하면서 뒷전에 물러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자식이 잘못되면 울고불고 몸부림치면서, 성도에 대해서는 무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남을 흉볼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서 ‘서로’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붙잡아주고 같이 울 때 마음이 움직이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합심하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약 5:15-16). 비록 두세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마 18:19-20). 합심하는 기도에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행 1:14, 행 4:31, 행 12:5, 행 16:25-26).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 교회는 평안하여 더욱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서 어떤 어둠의 대적과도 싸워 능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서로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앙고백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하나님과의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길은 진실함 밖에 없습니다. ‘서로’의 축복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를 숨기는 자는 하나님과의 서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잠 28:13, 눅 15:17-24).
하나님과의 ‘서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모세의 지팡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모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지만, 하나님과의 서로가 이루어진 모세에게 있어서 그 지팡이는 단순한 지팡이가 아닌 능력의 근원되신 하나님 자신의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징표였습니다. 이런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함께 하십니다(시 147:6, 사 57:15).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뜻을 위한 산 제물로서 자신을 즐거이 바치길 원할 때 하나님은 서로의 관계를 인정하시어 강건함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요삼 1:2).
숯을 화로에 담아 방에 갖다 놓으면 순간적으로 훈훈해집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일 때 뜨거워지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서로가 그러한 축복입니다. 서로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롬 15:5-6)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목사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