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M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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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147, 요셉 57



(5) 야곱의 거대한 장례 행렬

 

회개 각성하는 큰 애통의 행렬이었습니다.

야곱의 장사식은 열두 아들의 회개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창세기 50:10-11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야곱의 장사 행렬은 왜 헤브론으로 직접 가지 않고 요단 건너편으로 돌아서 갔을까요? 야곱의 생애를 뒤돌아보면, 그의 삶에서 중대한 사건이 바로 요단 건너편에서 일어났었기 때문인데, 바로 얍복 강가에서 어떤 사람과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된 사건을 말합니다. 아마도 요셉은 부친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지고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은 브니엘을 기념하기 위하여 요단 강가 중에 얍복 강 근처에서 장사 행렬을 멈추어 놓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32:22-32).

51년 전에 아버지 야곱은 400명을 거느리고 온 에서 앞에 몸을 일곱 번이나 땅에 굽혀 절을 하면서 사랑하는 처자식들을 위해 어떤 굴욕도 믿음을 감내하였던 것이 있습니다(33:1-3). 열두 아들은 오직 믿음으로 걸어가셨던 그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떠올리며 뜨겁게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라는 속담처럼, 자식을 열둘이나 두었던 야곱의 생애는 그야말로 가시덤불 같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둘째 아들 시므온과 셋째 아들 레위의 세겜 성 살육 사건으로 야곱은 그 동네에서 주목 대상이 되어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와야 했습니다(34:1-31). 또한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을 때는 그의 어머니(라헬)가 출산의 고통 때문에 죽었습니다(35:18). 심지어 첫째 아들 르우벤이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히는 통간으로, 아버지의 권위가 송두리째 짓밟히기도 했습니다(35:22).

참으로 아버지 야곱의 생애는 열두 아들로 말미암은, 가시에 찔리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요셉을 비롯한 열두 아들은 아닷 타작마당에서, 아버지의 온 몸에 자신들로 인해 박혀 있는 수많은 가시들을 하나하나 빼어 내는 심정으로 7일간 가슴을 치며 통곡하면서 회개했을 것입니다. 부친 야곱이 부탁한 대로 야곱의 일생 노정을 하나하나 밟으면서 회개와 대각성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닷’(아타드)가시나무라는 뜻입니다(참고-3:18, 9:14). 두 번이나 특별히 언급된 요단강 건너편”(50:10-11)은 히브리어로 베에베르 하야르덴이며, ‘요단 강가, 요단강 주변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참고-32:19, 4:49, 18:7, 20:8).

야곱이 자식들의 무수한 가시에 찔렸듯이,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도, 타락하여 악해진 인생들의 무수한 가시에 찔리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한 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3:18, 6:8). 

사무엘하 23:6에서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때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기 위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했던 사람이었습니다(9:1-2). 그런데 이러한 사도 바울의 불신 행위는 마치 가시채( 끝에 뾰족한 쇠로 된 가시가 달린 소몰이 채)에 뒷발질하는 행위와 같았습니다(26:14). 여기에서도 불신 행위를 가시와 연결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악함과 불신의 가시들은 결국 예수님께서 가시에 찔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사야 54:5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요한복음 19:2에서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7:29, 15:17, 19:5).

이러한 예수님의 찔리심으로 인하여 인류에게는 죄 사함을 통한 평화와 치유의 대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53:5, 1:7, 1:14).

 

요셉의 관용(寬容)으로 대화목을 이루는 행렬이었습니다.

관용은 한자로 너그러울 관(), 얼굴 용()으로,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임이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관용은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까지 너그럽게 품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입니다. 남을 존중하고, 격려하고, 허물을 덮어 주는 마음입니다(10:12). 성경은 종말의 성도들에게 반드시 관용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4:4-5, 3:2, 3:17).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형들의 마음속에 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형들은 40년 전에 요셉을 팔아 넘긴 죄악으로 인하여, 요셉이 자신들을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37:18-28, 50:15). 이제 자신들은 가나안에서 이주해 온 노예의 신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자신들의 목숨은 요셉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고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들먹이면서 보복 당하지 않으려 했습니다(50:16-17). 그들은 동생이 자기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불안으로 공포를 느낄 정도로, 요셉에게 너무나 깊은 상처를 주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참으로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창세기 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이 가슴에 상처를 품었더라면 하나님의 섭리는 보이지 않고, 자기를 판 형제들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눈뜨고 난 후 형들이 하나님의 도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근의 때에 온 인류를 살릴 사명자로 키우기 위해 자신을 연단케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사용하신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에 요셉의 마음에는 일체의 옹졸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기초한 무한한 애정이 솟구쳤습니다. 그래서 형들을 눈물로 용서하고 품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장사식은 요셉의 눈물로 시작하여(50:1), ‘요셉의 눈물로 진행하다가(50:10), ‘요셉의 눈물로 마치고 있습니다(50:17). 장자 요셉의 회개와 통곡, 관용의 눈물은 나머지 형제들을 회개케 하고, 언약으로 하나 되게 하는 대화목의 끈이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눈물과 포용으로 형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한 지난날 화목의 재확인이요 절정이었습니다(45:15). 이는 앞으로 열두 지파의 공동체가 하나로 결속이 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전개될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한 번도 하나님 대접을 받지 않으셨습니다(2:6). 종의 형체를 가졌습니다(2:7).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2:7).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2:8). 빌립보서 2:5에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는 마음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이요, 어떤 핍박과 죄악까지도 완전히 용서하는 넓은 마음인 것입니다(23:34, 참고-5:44, 46, 18:22). 요셉의 넓은 마음에 전 이스라엘 12지파의 화목과 민족적 구원의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전 우주보다 넓은 관용이야말로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목시키고 전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였습니다(19:30, 5:7-9).

 

가나안 주민들은 야곱의 장례 행사를 보면서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그곳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애굽인의 곡(). 50:11]이라고 그 지명까지 바꾸어 불렀습니다.

야곱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장례가 이토록 성대하게 치러진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횃불 언약대로 그의 후손들이 반드시 가나안에 입성할 것을 미리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15:14-16).

그렇다면 가나안 땅 선영으로 운구되는 야곱의 심히 큰 장례 행렬은 무엇을 연상케 합니까? 횃불 언약의 예언대로 약 413(주전 1859-1446) 후에 전개될 이스라엘의 심히 큰 출애굽 행렬, 승리의 행렬을 미리 보여 주는 듯합니다. 또한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한 것은 가나안 땅을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소유로 인()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동시에 이것은 야곱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 올리시겠다고 약속하신 브엘세바 언약(46:4)의 성취입니다.

 

야곱은 자기 생애의 끝자락에 횃불 언약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으로, 먼 장래에 취하게 될 가나안 땅을 이미 붙들고 숨져 갔습니다. 참으로 그의 말년은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평화스러운 저녁 노을과도 같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횃불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제 3대 야곱을 통해 더욱 확고하게 성취되어 갔습니다.


야곱의 향년 147년은 출생부터 마지막 장사까지 그 생애의 굴곡에 따라 7단계로 분류할 수 있고, 일생 동안에 중대한 사건이 있었던 세부적 장소는 17군데이며, 거리로는 총 2,580km에 이르는 방대한 노정입니다. 7단계 17장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브엘라해로이, 그랄(그랄 골짜기), 브엘세바

2벧엘(루스), 밧단아람(하란)

3길르앗 산지, 마하나임, 브니엘(얍복), 숙곳, 세겜

4벧엘, 베들레헴(에브랏), 에델 망대,

5헤브론, 브엘세바

6애굽(고센)

7막벨라(헤브론)

 

야곱은 발꿈치를 붙잡은 자, 대신 들어앉은 자라는 뜻으로, 풍파 많은 일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브엘라해로이에서 출생하여, 그랄 골짜기에서 우물로 인해 부친 이삭이 당한 핍박과 승리,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이삭의 나그네 생활 중 심지인 브엘세바에 함께하였으며, 벧엘에서 하늘 문이 열려 그 꼭대기까지 닿은 사닥다리 환상 체험, 에서를 피해 도피한 밧단아람 외삼촌 라반에게서 당한 20년 환난, 가나안 귀향과 라반과의 평화 언약, 20년 원한의 복수심을 품은 에서와의 극적 화해, 세겜에서 당한 딸 디나의 수욕, 벧엘로의 귀향(엘벧엘), 베들레헴 길에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은 슬픔, 에델 망대에서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를 통간한 비극, 헤브론에 정착한 지 1년 즈음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을 잃어버린 비통함 등을 겪고, 그의 노년(130)에 전 가족 70명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여, 애굽의 기름진 고센 땅에 거한 지 17, 향년 147년에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의 일생 노정은 마치 여울목을 굽이치는 물결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노년에 애굽 왕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는 최고 국가의 왕을 야곱이 축복하였으니 이스라엘은 바로보다 더욱 크고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47:7-10). 애굽의 바로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입은 영적 거인임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모든 의문과 실마리가 다 풀렸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과 구속 경륜을 이해했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그의 영안은 더욱 크게 열렸습니다.


자기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였습니다.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자를 기르신 하나님(48:15)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48:16)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48:16)

 

그리고 이스라엘은 요셉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렀을 때 장차 이루어질 구속 경륜을 따라 자기 손을 어긋놓아 오른손을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얹고, 왼손으로 장남 므낫세의 머리 위에 얹어 정확하게 축복하였습니다(48:17-20).

그리고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를 통한 메시아의 도래와 구속사의 완성을 훤히 내다보고, 영적 확신에 가득 차 열두 아들 각각에게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일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49:1). 그것은 열두 아들이 후일에 당할 일”(49:1)이요, 하나님께서 각인의 분량대로주신 축복이었습니다(49:28). 열두 아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기를 마친 후 그의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49:33). 그의 일생은 야곱의 삶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늘 함께하신 하나님과 그 영원한 언약의 최후 승리를 보여 줍니다.



박윤식 목사 "잊어버렸던 만남" (휘선, 2016), 270-275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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