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M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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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둘째 아들은 아벨이었습니다(창 4:2). 아벨은 히브리어로 ‘헤벨’로서, 뜻은 ‘허무, 공허, 숨(입김)’입니다. 그의 생이 갑자기 끝나게 될 운명임을 부지중에 암시하는 것입니다. 본래 자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려 함이 부모의 본성임에도 아담은 그의 둘째 아들을 ‘아벨’이라 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손상된 인간 존재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첫 조상 아담이 경험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첫 아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여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새로운 생명에 대한 소망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갔습니다(창 4:16). 이때 아담과 하와는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아벨이 형 가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은 지 얼마 못되어 큰 아들 가인마저 신앙의 길을 버리고 떠났으니,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야곱이 가장 마음에 두고 사랑했던 자식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래도록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고, 열 자식들의 위로가 헛되었으며, ‘아들에게로 가리라’ 소리치며 울었던 것이 생각납니다(창 37:34-35). 이것이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아담과 하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참으로 극심한 슬픔과 절망이 아담 가정을 어둡게 드리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로서 셋을 주어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의 나이 130세에 낳은 셋은 아벨 대신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고, 넘치는 소망과 위로의 선물이었습니다.  

 

셋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쉬트’로서 이것은 ‘세우다, 고정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벨은 그 이름처럼 허무하게 수(壽)를 다하지 못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셋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온전히 세워지고 굳게 뿌리내리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박윤식 목사, “창세기의 족보 (휘선, 2015), 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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