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M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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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of Benjamin and death of Rachel (Gen 35:27)

Reunion with Isaac at Hebron (Gen 35:27)

1900 BC (estimated), 182nd Year of the Covenant of the Torch


이삭 166, 야곱 106, 요셉 16

Isaac's age, 166; Jacob's age, 106; Joseph's age, 16

 


(2) 라헬의 죽음(35:19-20)

 

라헬이 베냐민을 난산(難産)하고 죽게 된 것은, 첫아들 요셉을 낳은 후 약 16년이 지난 나이였고 힘겨운 여행 중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죽은 라헬은 에브랏(베들레헴)에 장사되었는데, 이때 야곱은 라헬을 위하여 그녀를 장사 지낸 곳에 비를 세웠습니다(35:19-20). 에브랏(베들레헴)은 야곱의 일생 노정 17장소 가운데 열두 번째입니다.


라헬의 언니 레아는 안력(眼力)이 부족했지만, 동생 라헬은 외모가 곱고 얼굴이 아리따운 여자였습니다(29:17). 라헬은 야곱의 첫눈을 사로잡아 사랑을 독점했습니다(29:18-20, 30). 야곱은 위기에도 라헬을 극진히 아끼고 자기 생명처럼 보호했습니다(33:2, 5-7).


그러나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끝없는 욕심 때문에 신앙적이지 못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자신이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하는 동안에 아들 넷을 낳은 레아를 투기하여,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라고 불평하였습니다(30:1). 화가 난 야곱은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라고 꾸짖었고, 생명의 탄생은 오직 하나님 손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30:2).


라헬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자식 없는 괴로움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하여야 했으나(삼상 1:10-11), 레아를 투기하다가 결국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의 시녀 빌하에게 들어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라고 인간적인 꾀를 내었던 것입니다(30:3). 이때 라헬은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시녀 빌하가 낳은 첫 번째 아들 이름을 단(“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이라 하고, 두 번째 아들 이름을 납달리(“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라고 하였습니다(30:4-8).


또한 라헬은 레아의 첫아들 르우벤이 제 어미에게 드린 합환채를 빼앗아 그것을 이용해서라도 자식을 낳고자 했습니다(30:14-15). 합환채는 한자로 합할 합(), 기쁠 환(), 나물 채()’이며, ‘합환’(남녀가 함께 자며 즐김)이란 말 그대로, 성욕을 증진시켜 수태하도록 하는 불임 치료제였습니다. ‘불임에 한 맺힌 라헬은, 아이를 얻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지 않고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외삼촌 라반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 라헬이 그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도적질한 것도(31:19), 그녀의 지나친 탐욕이 빚은 우상 숭배 행위였습니다(3:5). ‘드라빔’(히브리어, 테라핌)고치다, 치료하다라는 뜻의 라파에서 유래된 말로, 치료나 복을 구하기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가정신(家庭神)이었습니다. 드라빔은 사람의 크기만한 것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작은 크기로, 가정 제단에서 사용되었습니다(31:19, 34, 삼상 19:11-17). 사사 시대에도 미가의 모친이 은으로 신상(神像)을 부어 만들어 집에 두고 있었는데, 신당에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놓고, 제사장을 세워 제사하였습니다(17:4-5). 한편, 단 지파에서 보내진 다섯 정탐꾼은 라이스 점령을 기대하면서 미가의 집에 들어가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하였습니다(18:14-20).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때에 이런 신상들을 제거하였지만(왕하 23:24),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드라빔 숭배는 곧 우상 숭배입니다(삼상 15:23, 3:4). 이방 왕은 그것을 점()치는 데 사용하였고(21:21), 스가랴 선지자는 드라빔 숭배 행위를 우상 숭배라고 책망하였습니다(10:2).


라헬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손에 넣은 사람처럼 그 드라빔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우상을 약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아서 아비 라반에게 마침 경수가 나므로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라고 거짓말을 해서 드라빔을 완벽하게 감추었습니다(31:34-35). 라반은 경수가 흐르는 여자가 그 신들(드라빔)에 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라헬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드라빔은 야곱에게도 끝까지 숨겼지만, 훗날에는 그 실체가 드러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이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순수한 신앙이 아니고, 드라빔이 주는 막연한 행운도 챙기겠다는 탐욕이었습니다. 골로새서 3:5에서 탐심은 곧 우상 숭배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의 악이 인간의 마음을 얼마나 심하게 미혹하여, 인간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도주한 때는 주전 1910(야곱 96)으로, 노아가 죽은 지 198(주전 2108-1910)째였고(9:28-29), 노아의 경건한 아들 셈이 죽은 지 46(주전 1956-1910)이요(11:10-11), 강을 건너는 신앙 개혁을 일으켰던 노아의 4대손 에벨이 죽은 지 17(주전 1927-1910)이요(11:16-17),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의 2차 부름을 받아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떠난 지 181(주전 2091-1910) 되었을 때입니다(12:4).


라반은 브두엘(나홀의 아들)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하란에서 경건한 조상 셈과 에벨의 신앙을 본받았더라면, 그 후손들이 우상에서 떠나도록 혼신의 힘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오히려 나홀-데라의 불신앙의 계보를 따라 드라빔을 섬기며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20년간 라반이 섬기는 우상 숭배의 악을 고치려고 애를 썼을 것이나, 외삼촌 라반의 우상 숭배는 너무도 뿌리가 깊어, 그 악은 뽑히지 않았습니다. 라반은 우상 숭배에 오염된 습관을 떨치지 못하고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아브라함의 하나님과 혼용하여 불렀으나(31:53), 야곱은 그와 달리 오직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했습니다. 라헬 역시 어린 시절부터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어서, 남편과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약속의 땅을 더럽힐 우상도 그 품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상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우상이 그의 삶을 다스리는 왕입니다(5:26). 우상 숭배자들은 그 우상을 위하여 많은 재산도 아까워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46:6) 냅니다. 그것을 애써 자기 어깨에 메어다가 처소에 두고 엎드려 경배합니다(46:7). 처소에 둔 우상은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아무리 우상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치 못하고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합니다(46:7). 살아계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주시고, 품어 주실 수 있지만(19:4, 32:11), 우상은 그 숭배자들이 우상을 들어서 운반해야만 움직일 수 있고(5:26, 46:7),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헛된 것일 뿐입니다(44:9-20, 10:14-15, 2:18-19).


야곱은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줄 모르고, 그것을 훔친 자에게 무서운 저주를 하였습니다. 창세기 31:32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가장 사랑 받은 라헬이었지만, 벧엘에서 발행하여 기럇아르바(헤브론) 이삭의 집으로 가는 노중에 난산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 이스라엘 조상 중에 막벨라 굴에 묻히지 못한 유일한 조상이 되었습니다(49:30-31). 오히려 레아가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고(49:31), 라헬은 아버지 이삭의 집, 헤브론에 도착하지 못하고 베들레헴(에브랏) (히브리어, 데레크)에 장사되었던 것입니다(35:19, 27).



박윤식 목사, “잊어버렸던 만남” (휘선, 2016), 226-231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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