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5권 바벨론 포로 2차 귀환

2014.10.13 08:14

관리자 조회 수:6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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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은 지 79년 후인 주전 458년에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지도하에 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었음에도 거룩한 선민 공동체로서 합당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유다인들에게, 2차 귀환을 통해 인적·물적으로 큰 지원이 이루어지고, 에스라의 대대적인 개혁 운동으로 유다인들 내부의 영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귀환 목적과 시기
(1) 목적
① 성전을 중심으로 한 언약 신앙의 공동체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바벨론을 출발한 에스라는 귀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그 가운데 성전 제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레위인이 귀환에 전혀 응하지 않았음을 알고(스 8:15), 성전 봉사자들을 모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으로 38명의 레위인이 확보되었고 레위 사람을 수종들게 한 느디님 사람 중에 220명을 데려왔으며 그들의 이름을 다 기록하였습니다. 에스라 8:16-20에서 보듯이 제 2차 귀환에 동참할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을 모은 사실을 중점적으로 기록한 것은, 제 2차 귀환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전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 신앙의 공동체가 온전히 회복되게 하려는 데 있었음을 가르쳐 줍니다.

 

② 성전 제사의 회복에 필요한 큰 물질을 보충하기 위함입니다.
에스라는 바사의 왕과 모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은금과 바벨론 온 도에서 은금을 얻었고, 또 바사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와 제사장들이 드린 예물을 받았습니다(스 7:15-16, 8:25-27). 그 예물로는 각종 제사에 쓰이는 제물과 전제의 물품을 구입하도록 했습니다(스 7:17). 또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기명을 받았고, 그 외에도 성전에서 필요한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가져가라는 파격적인 허락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받지 않도록 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스 7:18-20, 23-24). 이러한 조치들로 귀환자들의 공동체가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재정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③ 에스라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종교 지도자로서 율법을 가르치라는 명령과, 행정 지도자로서 왕이나 유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큰 권세까지 부여받았습니다(스 7:25-26).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스 7:27-28), 에스라는 제 2차 귀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 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시기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458년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주전 464-423년) 때 제 2차 귀환을 하였습니다(스 7:7-9). 이때는 제 1차 귀환 후 79년이 지났을 때이고,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주전 516년)되고 58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3) 귀환 계기
아하수에로 왕(주전 486-465/464년)이 통치하던 시기에 발생한 ‘에스더 사건’은 제 2차 바벨론 포로 귀환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올렸던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인 ‘유다 민족’을 말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는 이 모든 일을 알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하고 각 지방의 유다인도 애통하여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에 4:1-3). 자초지종을 알게 된 왕후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3-14)라고 전했습니다.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의 기한을 정해놓고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도 금식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에 4:15-16).


에스더는 누구든지 왕의 부름 없이 안뜰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일사각오로 왕께 나아갔습니다(에 4:16). 왕과 하만을 초대한 잔치 자리에서 에스더는 유다인들이 하만에 의해 진멸될 위기에 있음을 왕에게 알렸고, 왕이 심히 노하여 하만과 그 일가를 완전히 진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만든 50규빗(약 22.8m) 되는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고, 하만이 유다인들을 말살할 날로 정한 12월 13일과 14일은 유다인 대적의 최후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에 7-9장). 그리하여 해마다 12월 14일과 15일을 명절로 지키도록 하였는데, 유다인들을 없애기 위해 뽑았던 제비를 뜻하는 ‘부르’라는 말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에 9:20-28). 


바사 제국 127도에 흩어져 있던 유다 전 민족이 몰살당할 뻔했다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섭리 가운데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은 이 사건이, 제 2차 포로 귀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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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자와 귀환 당시 상황
(1) 귀환자
에스라는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로서(스 7:6),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통해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스 7:13)라고 공포하고, 에스라를 ‘왕과 일곱 모사의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고 기록하여 에스라의 권한을 강하게 해 주었습니다(스 7:14).


(2) 귀환 때 가지고 나온 재물
바사의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과 또 바사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린 은과 금과 기명들을 에스라가 제사장 12인에게 달아 준 것은, 은 650달란트(22,100kg), 은 기명 100달란트(3,400kg), 금 100달란트(3,400kg), 금잔 20개(1천 다릭, 8.4kg: 금잔 1개당 420g),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 2개였습니다(스 8:25-27, 참고-스 7:15-16).


제 2차 귀환자들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며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스 8:21). 그리고 1월 12일에 아하와 강을 떠나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스 8:31). 아닥사스다 왕 제 7년 1월 1일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5월 1일에 도착했으므로 약 4개월이 걸린 것입니다(스 7:9). 실제 여행 거리는 약 1,500km가 넘는 험한 노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귀환하는 자들을 도우셔서,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스 8:31).


(3) 에스라의 개혁 운동
①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
제 2차 귀환의 지도자 에스라(뜻:여호와께서 도우신다)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스 7:1-6, 참고-대상 6:3-15, 49-53) 제사장이었으며 학사(서기관)를 겸한 지도자였습니다(스 7:6, 11, 12, 21, 10:10, 16). 에스라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즉위한 해인 주전 464년에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스 7:1, 6), 1차 귀환 시기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아들 요야다(느 12:10, 26), 3차 귀환의 지도자 느헤미야의 활동 시기에도 함께 사역을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출생하였지만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귀환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율법에 익숙한 학사 겸 제사장(스 7:6, 10)으로, 국가적 대혼란 시기에 유다 역사에 변화의 첫 물꼬를 튼 위대한 개척자였습니다.


② 에스라의 개혁 운동
바벨론에서 귀환한 에스라는,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인이 이방과 결혼하고 방백과 두목이 앞장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과 혼잡시키는 것을 알고, 그 죄를 걸머지고 자복했습니다. 그때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며, 이방 여인과 그 소생을 내어 보내기로 결단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며 하나님의 진노가 떠나기를 바랐습니다(스 9:1-15, 10:1-14).


10월 1일부터 1월 1일까지 석 달간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이스라엘 중에서 이방 여인과 통혼한 자들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그 명단을 낱낱이 공개하였습니다(스 10:16-44). 이 명단을 보면, 백성보다 지도자들 가운데 죄가 더 크게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스 9:2). 또 에스라 10:44에는 “...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라고 했으니, 이 개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아내뿐만 아니라 자녀와도 생이별해야 하는 쓰라린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이루기 위해 말씀의 뜻대로 하는 개혁은, 육정을 끊는 아픔까지도 능히 참고 견디며 이겨 내야 하는 것입니다(마 10:37).


제 1차 귀환 이후 어렵게 성전 건축을 마치고도 타락의 길을 걷고 있던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제 2차 귀환과 함께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셨습니다(스 7:6-9).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통해 온 백성이 회개하고 각성하여 믿음의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크신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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