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8 18:19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날이 3일 남은 고난주간 화요일의 일입니다. 종교지도자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엮기 위해 이혼 문제를 들어서 가당치 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그들의 질문을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인간이 나눌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종교지도자들은 신명기 24:1-3을 가지고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고 이혼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며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신명기 24:1-3은 이혼을 장려한 것이 아니라 이혼을 제한하는 말씀입니다. 이혼에 대한 율법은 죄악된 인간의 완악함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창조원리를 가지고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본래는’은 헬라어로 ‘아프 아르케스’(ἀπ᾽ ἀρχῆς)로, ‘~로부터’라는 뜻의 ‘아포’(ἀπό)와 ‘처음, 근본, 기원’이라는 뜻의 ‘아르케’(ἀρχῆς)가 합쳐져 “처음부터, 근본부터, 태초부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본래’를 ‘사물이 전해 내려오는 그 처음, 원래, 원시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율법이 주어졌으니,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본래’ 창조된 세계대로 있을 것 아니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모세의 말꼬리였지만, 예수님의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창조 본연의 세계에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일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시며 본래의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통해 설명하셨습니다(마 22:23-33).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건을 보면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습니다. 그러니 죄의 형벌을 받는 것밖에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본래’에 두고 살피고 관찰하고, 진행과정 속에서 찾으십니다. 언제나 문제의 답은 성경 말씀 속의 본래의 세계에서 찾아야 바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래의 세계는 타락 이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결론까지 들어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때로는 상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분노하고 서운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본래를 놓고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본래대로 계신 분이십니다(말 3:6, 히 1:12, 13:8).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이 본래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리를 감싸 안고 있습니다(요일 4:7). 본래의 세계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목사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