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3 21:02
사명을 망각하면 평안이 없습니다. 아담에게는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사명이 있었지만(창 2:15), 사명을 내동댕이치고 선악과를 먹고 범죄함으로 평안을 잃어버렸습니다. 죄를 짓고 자신이 벌거벗음을 알고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생겨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진짜 어디 숨었는지 모르셔서 물어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네 상태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느냐, 아담의 ‘처소성’을 묻고 계신 것입니다. ‘아담’은 원래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볼 때 이기는 자에게 새 이름이 있습니다(사 62:2, 계 2:17, 3:12). 만약 ‘사람’인 아담이 유혹을 이겼다면 새 이름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아담은 뱀의 유혹에 넘어감으로 이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이는 세계에서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름을 주고자 하셨지만, 사람은 사람됨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이 터질 듯이 아프시지 않았겠습니까?
요나 선지자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내동댕이치고 다시스로 도망갈 때, 풍랑을 만나 배가 깨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명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명이란, 마음에 들면 순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굶든지 매사에 가장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사명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사명을 붙잡고 있으면 평안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명을 저버리고 도망치는 자에게는 결코 평안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역장을 맡았거나, 집사, 장로, 권사… 어떤 직분을 맡아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명을 완수해야 평안한 것입니다.
일전에 큰소리를 떵떵 쳤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뒤에 멀찍이 거리를 두고 좇아가지 않았습니까? 가장 앞장서서 예수님을 변호해야 할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하는 순간 멀찍이 따라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명대로 살지 않는 것은, 주와 함께 동행한다고 말은 하지만 어떤 불이익을 당할까봐 멀찍이 따라가는 것입니다(막 14:54, 눅 22:54).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생활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양심이 소리쳐도 모른 척 죄를 지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이나 똑같은 죄입니다. 그러할 때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사명대로 살려고 하면 먼저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이 샘솟습니다. 그 가정에 축복이 넘쳐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명 있는 요나, 사명 있는 베드로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빌 4:6-7).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목사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