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30 10:26
영국의 일간지에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광고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 ‘모래성을 쌓고 있는 어린 아이, 집안일을 마치고 아이를 목욕시키는 어머니, 대수술을 마치거나, 예술 작품을 끝내고서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는 의사나 예술가’가 뽑혔다고 합니다. 복, 축복, 행복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행복은 대부분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기의 성공사례나 가문의 자랑,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자식의 성공 등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죄를 사함 받은 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이 충족된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창 2:24). 한마디로 부끄러움이 없는 세계로서 참으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도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파괴되고 말았으니, 죄가 있고서는 결코 어떠한 복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 시 32:1-2 말씀대로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죄는 죄를 낳습니다. 죄는 죄의 친구를 또 데리고 와서 우리를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뜨립니다. 죄는 우리를 용서치 않고 인정사정없이 병들게 하고 낙심케 하고 망하게 하고, 결국엔 죽이고 맙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므로 이 죄를 사함 받은 자들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7). 그분의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이고 현세적이며 향락을 추구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치 팥죽 한 그릇에 소중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와 같이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지 못하고 현세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림자와 같고 없어질 안개와도 같은 세상에서(고후 4:18), 예수님께서 주시는 용서의 축복을 받을 때,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복을 추구할 때 보통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남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불이나 베개, 옷, 심지어 수저와 식기에까지 한자로 복(福)자를 새겨 넣고 복을 갈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복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라는 대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축복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오지 않고 복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볼 때 기독교의 축복관은 하나님 중심적이요 교회 중심적이며, 감사가 뒷받침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이야말로 참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빠지고 교회가 빠지고, 감사가 없는 복은 소망할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품는 자는 참된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전 1:24, 30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안에 모든 부요와 지혜와 지식, 그리고 죄 사함을 받는 구속(救贖)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의인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깊게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이 참된 행복자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주시고 죽음 가운데서 속량물을 주고 빼내신바 된 행복자입니다(사 43:1-3).
성도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대하 32:25-26을 볼 때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함으로 다시 생명을 연장 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이탈하거나 교회를 멀리하는 자, 하나님을 멀리하고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절대 축복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만이 진정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둘째로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보호해 주십니다(요일 3:9, 5:18).
복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악한 자의 꾀에 넘어가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주시는 축복을 소망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목사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