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2 10:21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길들을 택하시지 않고, 계속 진행 방향을 돌리고 혹은 돌쳐서, 결국에는 홍해를 건너 시나이 반도 남단으로 향하는 가장 먼 길을 택하셨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우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당시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코스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당시 주요 무역로였기 때문에 그 길은 애굽의 국경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고,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호전적인 블레셋 군대가 지키고 있는 가사(Gaza)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길로 간다면 애굽과 블레셋 군대와의 전면전이 불가피했습니다. 다른 길들 역시, 전쟁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왕과 애굽 군대를 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출 14:4)
출애굽기 14:17-18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18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수많은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나일강 하수에 던져 무참히 살해하고(출1:22), 400년 동안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애굽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홍해로 유도하셨습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근처 믹돌 앞에 진을 치자 그들이 광야에 갇힌 것으로 판단하고, 그 마음이 변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뒤따라왔습니다(출 14:3-7). 그러나 이것은 고의적으로 이스라엘이 광야에 갇힌 것처럼 노출시켜, 애굽의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로 유인하는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의 장막 친 데까지 따라왔으며(출 14: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바다 가운데로” 뛰어들었습니다(출 14:23).
이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을 비롯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여 바로의 군사들을 공포에 떨게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정신을 빼놓았습니다. 바퀴가 빠지고 망가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셨고(출 14:24-25), 마침내 새벽에 바다의 세력을 회복시켜 홍해를 합치심으로 한 사람도 홍해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시고 모두 죽였습니다.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겠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 바로 왕과 애굽 장관들, 군대들 모두가 홍해 속에 수장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왕과 애굽 군대가 홍해에 빠져 죽은 사실은 성경에서 여러 번 확실하게 증거되고 있습니다(출 14:27-28, 15:4-5, 10, 21, 시 78:53, 106:11).
출애굽기 14: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출애굽기 15: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시편 136:15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을 성취시키는 성민(聖民)으로서 자유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박윤식 목사 "잊어버렸던 만남" (휘선, 2016), 321-324쪽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