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9 20:28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벳바게에 도착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귀를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서 주인이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라고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막 11:2-3). 여기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스가랴가 예언했던 ‘메시야가 나귀 새끼를 타신다’는 말씀의 성취입니다(슥 9:9).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셨을까요?
먼저, 나귀는 겸손의 상징입니다. 나귀 새끼는 조그만해서 성인 남성이 타면 발이 땅에 닿을 정도입니다. 늠름한 군마 위에 탄 개선장군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없지만, 나귀 새끼에 탄 예수님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겸손히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두 번째로, 나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말은 농사에는 전혀 쓸 수 없고 오직 전쟁에만 사용될 수 있는 동물입니다(참고- 신 17:16, 슥 9:10). 반면, 나귀는 덩치가 작아 전쟁에는 아무 쓸모가 없고 빈천한 자들이 타고 다니는 짐승입니다. 출애굽기 13:13에서는 나귀의 첫 새끼를 다 양으로 대속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비천한 나귀같은 인간들이 구속받는 평화의 날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시면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마 23:37-39, 눅 13:34-35, 19:41-48). 여기 ‘울다’는 헬라어 ‘에클라우센’으로 단순히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신병자로 볼 정도로 대성통곡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이 10만 대군을 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식량을 끊자, 자녀까지 잡아먹는 참상 속에서 110만이 학살당하고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시고 우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니엘 선지자는 자신의 가족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자기 민족들의 범죄를 걸머지고 땅을 치고 울며 금식기도 하였습니다(단 9:3-19).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세계 열방을 향한 경영을 밝히 보여주시는 축복된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단 9:24-27)? 지금은 마지막 회개의 기회입니다. 주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어린 아이들이 외친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시 118:25). 오늘날 평강의 성도 여러분 모두가 우리 민족이 오늘 하루만큼은 “다윗의 자손 호산나!” 외치며 회개하고 주 앞으로 나아오는 믿음을 허락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목사의 설교 중에서